바이오쇼크 후기
나는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이오쇼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총도, 플라스미드도 아니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등대에서 잠수정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고, 창문 너머로 거대한 수중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랩처였다. 도시 전체가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데, 이미 망해버린 장소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궁금증을 키웠다. 누가 이런 도시를 만들었고,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알고 싶어서 계속 앞으로 갔다.
반전을 준비하는 전체 과정
랩처와 이야기는 여전히 강함
이미 망한 도시인데 왜 계속 내려가고 싶었을까
랩처는 처음부터 폐허다. 물은 새고 조명은 깜빡이고, 복도에서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혼잣말을 한다. 멀쩡한 곳보다 망가진 곳이 더 많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는 한때 이곳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공연장과 상점, 화려한 간판과 고급스러운 장식 사이에 피와 시체가 섞여 있다. 그래서 랩처를 돌아다니는 느낌은 단순히 무서운 공간을 탐험한다기보다 이미 멸망한 도시의 박물관을 걷는 것에 가깝다.
더 마음에 들었던 건 게임이 이 도시의 역사를 긴 영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벽에 붙은 선전 문구와 음성 기록, 버려진 방과 망가진 시설을 하나씩 보면서 과거를 맞춰간다. 처음에는 괴물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질문이 달라진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도시를 만들려고 했던 걸까.
처음에는 그냥 쓰러뜨려야 할 악당인 줄 알았다
랩처를 만든 앤드류 라이언은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정부와 종교, 다른 사람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도시를 원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만큼 가져가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만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생각 자체는 꽤 매력적으로 들린다.
문제는 그 이상이 현실과 만났을 때다. 랩처에도 결국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생긴다. 사회는 갈라지고 사람들은 더 강한 힘을 원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도시를 만들겠다던 라이언은 자신의 도시가 흔들리자 점점 더 많은 것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자유를 위해 만든 도시가 자유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랩처에서 가장 무서웠지만 이상하게 가장 슬펐던 존재
랩처에서 가장 강렬했던 존재를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빅 대디였다. 무거운 잠수복 같은 몸에 거대한 드릴을 들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다닌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보스처럼 보여서 괜히 공격했다가 순식간에 바닥에 누웠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빅 대디가 먼저 공격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틀 시스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플레이어가 건드리지 않으면 자신의 길을 간다. 괴물처럼 보이는 모습과 행동 사이에 묘한 차이가 있다.
리틀 시스터 역시 단순한 보상 상자가 아니다. 더 많은 ADAM을 얻기 위해 희생시킬 것인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구해줄 것인지 플레이어에게 직접 선택하게 한다. 그때부터 바이오쇼크는 단순한 FPS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계속 바라보는 게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게임은 계속 내가 결정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플레이하는 동안 선택할 것은 꽤 많다. 권총과 샷건 중 무엇을 먼저 강화할지, 어떤 플라스미드를 사용할지, 적이 모여 있는 방을 정면으로 뚫을지 함정을 깔지 내가 결정한다.
전기를 물에 흘려보내 적을 한꺼번에 감전시키거나, 보안 장치를 해킹해 적을 공격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전투 방식도 상당히 자유롭다. 처음에는 총을 들고 다니는 평범한 FPS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직접 상황을 설계하는 재미가 커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착각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움직이고 결정하는 사람은 나라고. 목적지를 정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도 실제로 총을 쏘고 길을 선택하고 문을 여는 사람은 나니까 말이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들었던 말이 게임 전체를 뒤집었다
바이오쇼크의 가장 유명한 반전은 아주 평범하게 들렸던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게임 내내 무전을 통해 도움을 주던 아틀라스가 부탁을 할 때마다 반복하던 말이었다.
처음 들을 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그 표현이 사실 주인공 잭에게 특정 행동을 강제하기 위한 명령어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서 충격적인 건 주인공만 속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플레이어도 똑같이 속았다.
게임에서 목적지가 표시되면 그곳으로 간다. 누군가 문을 열라고 하면 문을 연다. 특정 인물을 찾아가라고 하면 찾아간다. 우리는 그 행동을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인다. 바이오쇼크는 바로 그 당연함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라이언이 마지막까지 증명하려 했던 것
그래서 앤드류 라이언과 직접 마주하는 장면이 더 강하게 남는다. 게임 내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독재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린다.
라이언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이용해 잭이 스스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명령을 따르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플레이어는 화면을 보고 있지만 그 장면에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아이러니했다. 자유를 외치며 랩처를 만들었다가 결국 도시를 통제하려 했던 라이언은 자신의 죽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한다. 반대로 게임 내내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던 잭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바이오쇼크의 이야기가 가장 날카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음성 기록으로 자연스럽게 채우는 세계관
플레이 방식과 스토리를 연결한 반전
빅 대디와 리틀 시스터의 강한 존재감
플라스미드를 활용하는 다양한 전투 방식
후반 전투가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구간
아이템 관리가 번거로운 순간
최고점 이후 스토리가 조금 길게 느껴짐
일부 길찾기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음
결국 반전보다 그 반전을 준비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바이오쇼크의 반전이 강했던 이유는 놀라운 사실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적을 죽이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냥 게임이니까 그렇게 했다. 그리고 바이오쇼크는 마지막에 그 행동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정말 내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게 맞았을까.
자유롭게 랩처를 탐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가장 잘 길들여진 사람은 플레이어였다.
바이오쇼크의 그래픽과 전투에서는
분명 세월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랩처에 처음 내려갔던 장면과
앤드류 라이언을 마주했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좋은 반전은 플레이어를 놀라게 하지만,
정말 좋은 반전은 그전에 했던 행동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바이오쇼크가 오랫동안 명작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아마 그 차이에 있는 것 같다.
본 글에는 BioShock Remastered 공식 스토어에 제공된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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